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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유학시절, LA에서 보낸 웃긴 하루

by 호호아저씨호 2025. 8. 15.

LA Santa Monica Beach

 

뉴욕 유학 시절, 봄 방학을 맞아 훌쩍 떠난 LA 여행은 계획보다 훨씬 재밌는 일들로 채워졌습니다. 비버리 힐즈의 l’Hermitage 호텔에서 미드 ‘프렌즈’ 주인공을 엘레베이터에서 잠시 마주했고, 루프탑 수영장을 전세 낸 듯 혼자 차지해 놀았습니다. 라라랜드 촬영지를 보겠다고 나섰다가 LA 그리피스 천문대를 향해 2시간이나 걸려 도착해야 했고, 게티 센터와 LACMA에서 미술품들을 보며 . 모든 장면이 유학 시절 제 웃픈 추억 앨범에 그대로 박혀 있습니다.

뉴욕에서 LA로, 공기가 다르네?

미국에서 대학을 보내면, 학기중에는 에세이에 과제에 시험에 정말 정신없이 흘러갑니다. 그리고 방학에는 꼭 어디로 떠나곤 했는데, 그 해의 방학에는 LA를 방문하기로 했죠. JFK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6시간,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확 달랐습니다. 뉴욕의 거친 바람 대신 야자수 그림자와 따뜻한 햇살, 그리고 약간의 바닷내음. 뉴욕이 3샷 에스프레소라면, LA는 얼음 띄운 오렌지 주스 같았습니다. 숙소는 침대가 너무 푹신해보이는 비버리 힐즈의 l’Hermitage 호텔을 예약했습니다. 방은 넓고, 침대는 푹신했고, 커튼을 열면 야자수가 인사하는 테라스가 있었습니다. ‘이거, 공부 스트레스 다 사라지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체크인하고 로비에서 웰컴 드링크를 한 잔 마시던 순간, 제 눈앞을 가로지른 건 정말 예상 못 한 장면이었습니다.

비버리 힐즈 호텔, 프렌즈 주인공이 진짜 눈앞에

로비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보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저 멀리서 걸어오는 익숙한 얼굴. 미드 ‘프렌즈’에서만 보던 그 배우였습니다. 뉴욕 유학생이라 그런지, 순간 ‘이건 센트럴 퍼크 아니야?’라는 생각이 스쳤죠. 모자 눌러쓰고 후드티 입었는데, 웃을 때 보이는 주름이 TV 속 그대로였습니다. 팬심은 있었지만, 괜히 방해하기 싫어서 그냥 가볍게 고개만 끄덕였죠. 속으로는 “야, 내가 진짜 프렌즈 멤버를 로비에서 보다니” 하고 난리였지만요. 다음 날 아침, 호텔 수영장에 나갔더니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뉴욕의 혼잡한 수영장에 익숙한 제게 이건 거의 로또 당첨급. 풀 옆 선베드에 수건 깔고 누워, 한 손에는 아이스커피, 한 손에는 잡지. 물속에 몸을 담그니 햇살이 수면 위에서 반짝였고, 그 순간만큼은 마치 프라이빗 풀빌라라고 느껴져 횡재한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루 중 가장 놀랐던 순간은, 잠시 산책 나갔다가 방으로 돌아왔을 때였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방 한쪽 숨겨져 있던 작은 접이식 식탁이 펼쳐져 있었고, 그 위에 예쁘게 세팅된 커피와 고급 초콜릿이 놓여 있었습니다. 누가 다녀간 건가 싶어 잠시 멈칫했지만, 그건 호텔에서 해준 깜짝 서비스였죠. 향긋한 커피 향과 달콤한 초콜릿 한 조각이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서비스에 아주 놀랐습니다. 

라라랜드 촬영지 찾아 2시간 드라이브

영화 속에서 라이언 고슬링과 엠마 스톤이 춤추던 그 언덕은, 실제로는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조용한 동네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도로 한쪽에는 오래된 주택들이 늘어서 있었고, 마당에서는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놀고 있었죠. 그 평범한 풍경이 오히려 영화 속 환상과 겹쳐져 묘하게 현실감을 주더군요. 우리는 삼각대를 세우고, 휴대폰으로 OST ‘City of Stars’를 틀었습니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몇 컷 찍고 말려고 했는데, 하늘이 주황빛에서 보라빛으로 변해갈수록 진짜 영화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친구는 “이거, 앞으로 10년 뒤에도 얘기할 순간이야”라고 했고, 저는 웃으며 “근데 그때도 이 장면 때문에 2시간 운전했다고 말할까?”라고 대답했죠. 해가 완전히 넘어간 후에도 한동안 그 언덕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영화처럼 그 순간이 정말 천천히 흘러가는 것 같았고, 넘어가는 해와 LA의 전경이 너무 아름다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게티 센터와 LACMA, 예술놀이

게티 센터는 케이블트레인을 타고 언덕을 오르는 순간부터 ‘전시’가 시작됩니다. 창밖의 LA 풍경이 프레임 속 작품처럼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길 반복하죠. 전시실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고흐의 붓질이었습니다. 교과서에서 수백 번 본 그림이었지만, 실제로는 질감이 살아있었고, 노란색이 단순한 색이 아니라 햇빛과 그림자, 그리고 고흐의 숨결까지 품고 있었습니다. 그림 앞에서 무심한 척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은 속으로 ‘아, 이건 사진으론 절대 못 전하겠다’ 하고 중얼거렸죠. 정원에서는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와 건축의 곡선이 묘하게 어울렸습니다. 잔디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며, 눈앞의 조경이 마치 설치미술처럼 느껴졌습니다. 이어 찾은 LACMA에서는 ‘Urban Light’ 앞에 서자, 1920~30년대 LA 거리를 재현한 듯한 가로등들이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레이어를 쌓아 올린 작품으로 다가왔습니다. 해가 지고 불이 켜지자, 하얀 기둥들이 하나씩 빛을 입으며 공간이 영화 세트장처럼 변했습니다. 셔터를 누르면서도, 이건 기록이 아니라 ‘참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반 라이트를 배경으로 해서 찍은 사진들이 마치 예술같았습니다. 

LA의 하루, 영화 속 장면처럼

그 여행은 계획대로 흘러간 것도, 전혀 예상 못 한 사건도 모두 섞여 있었습니다. 프렌즈 주인공과의 만남, 혼자 차지한 수영장, 2시간 걸린 라라랜드 촬영지, 예술 작품 사이에서 보낸 오후. 각각의 순간이 전혀 다른 장르의 영화 같았죠. 뉴욕에서의 제 일상은 늘 빠르고 촘촘했지만, LA에서의 하루는 여유와 웃음이 많았습니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LA는 계획보다 그날의 기분과 우연이 만든 순간들이 훨씬 더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오게 된다면, 굳이 모든 일정을 채우기보다 그 흐름에 맡겨보는 것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