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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크리스마스, 10박의 겨울 여행

by 호호아저씨호 2025. 8. 15.

뉴욕 시티 뷰

 

크리스마스 시즌의 뉴욕은 매년 있어도 매해 새롭고 프레쉬한 느낌입니다. 한국에서 온 친구와 함께한 10박 동안, 우리는 맨해튼의 크리스마스 트리와 불빛, 뉴 뮤지엄의 실험적인 전시, 브루클린의 감각적인 카페와 마켓 등 뉴욕 곳곳을 거닐었습니다. 크리스마스마켓에서의 작은 해프닝, 브루클린 브리지 위의 야경, 재즈 바, 센트럴 파크, 5번가의 크리스마스 트리까지 뉴욕의 크리스마스를 제대로 느껴보았습니다. 

찬란한 겨울, 10박의 시작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뉴욕은 거대한 축제의 무대가 됩니다. 5번가와 브라이언트 파크, 브루클린의 작은 골목까지 불빛이 가득하고, 어디서든 캐럴이 흘러나옵니다. 친구를 JFK 공항에서 맞이하던 날, 우리는 그 해에 유행하던 뚱뚱한 롱 패딩을 입고 감격의 포옹을 했습니다. 뉴욕의 칼바람을 맞으며 “이제 진짜 겨울 여행이 시작이네.” 친구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첫날부터 시차 적응은 미루고 록펠러 센터로 갔습니다. 진정한 시차 적응은 12시간은 건너뛰어 줘야 푹 잘 수 있기 때문이죠. 거대한 트리와 스케이트장, 그 위로 쏟아지는 불빛 사이에서 사람들은 추위 속에서도 너무나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차디찬 바람 속에서도 활기찬 뉴욕의 느낌이랄까요. 친구는 계속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고, 뉴욕을 배경삼아 멋진 사진이 많이 남았습니다. (인스타 피드가 많이 생겼죠 ^^) 친구가 머무는 10박 동안 크리스마스 명소, 예술, 역사, 브루클린까지 둘러볼 계획이었지만, MBTI 유형이 P인 친구와 함께 하다 보니 매일 계획이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뉴 뮤지엄에서의 겨울, 실험적인 예술과 마주하다

한한 날은 로어이스트사이드에 있는 뉴 뮤지엄(New Museum)으로 향했습니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건물은 마치 하얀 상자를 층층이 쌓아 올린 것 같았고, 겨울 햇살 아래 더욱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외관만으로도 이곳이 평범한 미술관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전시관 안으로 들어서자, 벽과 천장을 가득 채운 설치 작품과 대형 영상 작품들이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한 공간에서는 바닥에 깔린 모래 위로 빛이 투사되어, 관람객이 걸을 때마다 패턴이 변했습니다. 친구는 그 위를 조심스럽게 걸으며 본인이 작품이 된 것처럼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마치 움직임 자체가 전시의 일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어진 전시실에서는 1970~80년대 미국 사회의 변화와 갈등을 담은 사진과 그래픽 아트가 걸려 있었습니다. 흑백 사진 속 시위 장면은 인물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또렷했고, 빛바랜 간판과 거리의 공기가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컬러 그래픽 작업은 당시 대중문화의 화려함과 불안이 섞인 톤을 사용했는데, 멀리서 보면 화려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거친 붓자국과 질감이 드러났습니다. 그 거친 표면이 오히려 작품의 주제를 더 선명하게 전달하는 듯했습니다.

한쪽 벽에는 미디어 아트를 이용한 작품이 설치돼 있었는데, 화면 속 뉴스 영상이 반복 재생되면서 관람객의 그림자가 그 위에 겹쳐졌습니다.스스로가 뉴스 화면 속 한 장면이 된 듯한, 약간은 불편하면서도 묘한 몰입감을 주는 순간이었습니다. 공간 전체가 묵직한 공기를 품고 있었지만, 창가 쪽으로 걸어가니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옥상 전망대에서는 로어이스트사이드의 낮은 건물 지붕 위로 크리스마스 장식과 불빛이 군데군데 반짝였고, 그 너머로 브루클린 브리지가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거리의 소음과 옥상에 스치는 겨울 바람은 갤러리 안의 고요함과 묘하게 대비를 이루었고, 친구가 뉴욕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도시뷰를 보는 것 같다며 아주 좋아했습니다. 

브루클린, 감각적인 하루

여행 넷째 날은 브루클린에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려 덤보(DUMBO) 지역으로 향하자, 회색 겨울 하늘 아래 브루클린 브리지와 맨해튼 브리지가 동시에 시야에 들어왔습니다. 다리 기둥 사이로 보이는 강물은 겨울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였고, 그 아래 자갈길에는 카메라를 든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습니다. 길을 걷다 보니 현지인들이 길게 줄 서 있는 베이글 가게를 발견했습니다. 문을 열자 고소한 빵 냄새와 갓 내린 커피 향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크림치즈가 듬뿍 발린 따뜻한 베이글을 한 입 베어 물자, 바깥의 차가운 강바람도 잊을 만큼 부드럽고 진한 맛이 퍼졌습니다. 오후에는 브루클린 플리마켓에 들렀습니다. 목재 테이블 위에는 손으로 만든 크리스마스 장식, 오래된 레코드판, 빛바랜 엽서들이 가득 놓여 있었고, 한쪽 부스에서는 한국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주인에게 말을 걸자 뉴욕에서 20년째 산 교포분이라며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친구는 “이런 데서 한국어 들을 줄 몰랐다”며 작은 도자기 컵을 기념품으로 샀습니다. 저녁 무렵, 우리는 브루클린 브리지를 걸어서 맨해튼으로 돌아왔습니다. 다리 위에서는 자동차 소리와 강바람이 뒤섞였고, 멀리 보이는 맨해튼의 불빛이 점점 더 선명해졌습니다. 깜깜한 하늘에 뉴욕 맨하탄의 마천루들이 반짝거리는 야경의 브루클린에서의 시간이 완벽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 거리에서 만난 순간들

여행 중간에는 크리스마스마켓을 여러 곳 돌아다녔습니다. 브라이언트 파크 마켓에서는 친구가 장갑을 흘렸는데, 5분 뒤 한 상인이 달려와 “이거 찾으시죠?”라며 건네줬습니다. 센트럴파크에서는 스케이트장이 있어 한 시간 정도 스케이트도 탔고, 세인트 패트릭 대성당 앞에서는 합창단의 캐럴을 들으며 잠시 서 있었습니다. 타임스퀘어에선 산타 복장을 한 퍼포머들이 기념사진을 찍어주겠다며 다가왔는데, 찍고 나서 팁을 요구하는 바람에 친구가 당황하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5번가에 있는 백화점 앞에서 거대한 전광판으로 상영되는 크리스마스 쇼도 장관이었습니다. 건물 외벽 전체가 하나의 무대처럼 변했고, 전광판 속 눈송이와 산타, 반짝이는 오너먼트가 음악에 맞춰 춤을 췄습니다. 거리는 이미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사람들로 붐볐고, 각자 핫초코나 카메라를 손에 든 채 전광판을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추위 속에서도 사람들의 숨소리와 웃음소리가 공기를 데우는 것 같았고,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크리스마스를 한껏 즐기고 있다는 생각에 묘한 일체감이 느껴졌습니다.

뉴욕 겨울이 남긴 것

10박 동안의 뉴욕은 매일 다른 얼굴을 보여줬습니다. 뉴 뮤지엄에서의 차분한 오후, 브루클린의 자유로운 거리, 크리스마스 트리와 불빛이 가득한 밤거리, 그리고 작은 해프닝들까지. 친구는 돌아가기 전날, “다시 오면 이번엔 한 달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10일 동안의 뉴욕은 사진처럼 하루하루가 선명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도 같은 공간이라도 여행이라는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서 그런걸까요. 사진을 보다 보니 또 한번 가고 싶은 뉴욕이네요. 뉴욕의 크리스마스, 그 공기와 분위기를 또 다시 느끼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