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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취소 공항48시간 생존기

by 호호아저씨호 2025. 8. 10.

48시간을 머물렀던 공항 내부 모습

 

 

비행기 취소로 공항에 고립되는 상황은 단순한 여행 지연이 아니라, 작은 사회 속에서 나만의 생존 전략을 세워야 하는 특수한 경험입니다. 저는 실제로 48시간 동안 인천국제공항에서 발이 묶였고, 그 시간 동안 음식, 수면, 위생, 정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체득했습니다. 비행기 결항 소식이 들린 순간부터, 좌석 대신 대리석 바닥에서 보내는 밤, 공항 내 숨겨진 휴식 공간과 무료 자원을 찾아다닌 이야기까지 모두 담았습니다. 이 글은 단순한 ‘불운한 여행기’가 아니라, 예기치 못한 고립 상황에서 버티고 살아남는 생생한 기록입니다.

 

비행기 취소, 공항에서의 첫날

여행의 끝은 원래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저에게 그 순간은 시작이 아니라 연장이었습니다. 목적지는 인천, 출발지는 방콕.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출국 게이트 앞 전광판에 빨간 글씨로 떠 있는 ‘CANCELLED’를 보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처음엔 단순 지연이라 생각했지만, 항공사 직원의 설명은 훨씬 잔혹했습니다. 기체 결함으로 오늘 비행은 불가능하고, 내일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의도치 않은 48시간 공항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첫날은 혼란과 분노, 그리고 약간의 모험심이 뒤섞인 상태로 흘러갔습니다. 공항이라는 공간은 환승객들에게는 편리하지만, 장시간 머물러야 하는 사람에게는 의외로 가혹합니다.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것은 ‘내 자리’였습니다. 전기 콘센트가 있는 곳, 주변이 조용하고, CCTV 사각지대가 아닌 안전한 공간. 여러 번 자리를 옮겨본 끝에, 출국장 끝자락 한쪽의 인포메이션 부스 뒤편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곳은 콘센트가 두 개 있었고, 의자 아래에는 발을 뻗을 공간도 있었습니다. 첫날 저녁은 간단히 공항 편의점에서 구입한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때웠습니다. 가격은 시내보다 두 배 비쌌지만, 따뜻한 국물 한 모금에 마음이 조금은 풀렸습니다. 잠자리는 더 큰 문제였습니다. 의자에 가방을 베고 누웠지만, 30분마다 들려오는 안내 방송과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조명 때문에 깊이 잠들 수 없었습니다. 이때 깨달았습니다. 공항에서 48시간을 버틴다는 것은 단순히 시간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생활 패턴을 공항에 맞게 재설정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죠.

 

공항48시간 생존 전략: 음식, 수면, 위생

둘째 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침’이라는 개념조차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공항은 24시간 불이 켜져 있고, 사람들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으며, 낮과 밤의 구분이 모호합니다.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세 가지를 확보해야 합니다. 음식, 수면, 위생. 이 세 가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체력은 빠르게 소진됩니다. 먼저 음식. 공항 내 식당은 대부분 비싸고 메뉴가 한정적입니다. 저는 공항 내 숨겨진 ‘직원 식당’을 발견했습니다. 비행기 승무원과 지상 직원들이 주로 이용하는 곳인데, 메뉴 가격이 일반 식당의 절반 수준이었고, 따뜻한 밥과 국, 반찬이 나왔습니다. 입구에 ‘STAFF ONLY’라고 적혀 있었지만, “Delayed passenger”라고 사정을 설명하니 웃으며 받아주었습니다. 이 한 끼가 저를 하루 종일 버티게 했습니다. 다음은 수면. 첫날의 실수는 의자에서 자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둘째 날은 공항 4층 한쪽에 있는 ‘의료 대기실’ 옆 조용한 공간을 찾았습니다. 대리석 바닥이었지만, 비상시 사용 가능한 담요를 요청해 깔고 누우니 의자보다 훨씬 편했습니다. 이어폰으로 백색소음을 틀어놓으니 안내 방송도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은 위생. 48시간 동안 씻지 않는 건 상상만으로도 괴롭습니다. 다행히 공항 내 환승호텔에 ‘샤워 서비스’가 있었습니다. 10유로를 내고 30분 동안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니, 다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습니다. 치약과 칫솔은 인포메이션 데스크에서 무료로 제공해주었고, 수건은 편의점에서 구매했습니다. 이렇게 음식, 수면, 위생을 해결하니, 공항 생활이 조금씩 ‘버티기’에서 ‘살아가기’로 바뀌었습니다. 사람을 관찰하는 여유가 생겼고, 비슷한 처지의 승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온 부부, 프랑스에서 온 학생, 그리고 한국에서 온 직장인까지. 공항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국적과 나이를 넘어선 작은 공동체가 형성되었습니다.

 

48시간이 남긴 의외의 선물

이틀이 지나고, 드디어 탑승 안내 방송이 들렸을 때 저는 안도와 아쉬움이 동시에 밀려왔습니다. 불편하고 피곤했던 시간이었지만, 그 안에서 느낀 것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행에서 ‘계획된 시간’만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예기치 못한 시간이 더 깊이 남습니다. 비행기 취소로 공항에 갇힌 48시간 동안, 저는 공간을 관찰하는 법, 낯선 사람과 대화를 시작하는 법, 그리고 불편함을 감내하며 나름의 질서를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은 ‘불확실성에 대한 적응력’입니다. 여행 중 변수는 언제든 생길 수 있고, 그것을 불행으로만 받아들이면 시간과 에너지가 모두 소모됩니다. 하지만 이를 경험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공항 바닥에서의 하룻밤조차 나중엔 웃으며 이야기할 추억이 됩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 제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그 48시간을 ‘고생담’으로 기억하지만, 저는 그것을 ‘생존담’이자 ‘인간관찰기’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여행은 목적지에 도착하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의 모든 변수를 품고 완성된다는 사실을, 이번 경험이 분명하게 알려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