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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이드, 반포에서 워커힐까지

by 호호아저씨호 2025. 8. 14.

서울 워커힐 라운지 바에서 본 야경

 

2025년 4월 갑자기 친구 인스타에 한국 서울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이야기 나누니 LA에서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하는데 한국에 잠시 들렀다며 급 일정을 잡게 된 날이었습니다. 짧은 일정이라 어디를 가고 싶을지 몰라 제가 서울 가이드가 되어 친구 취향에 맞게 추천하며 도시 곳곳을 함께 누볐습니다. 반포대교 펍에서 시작해 집 테라스에서 한우를 굽고, 밤에는 워커힐 호텔 라운지에서 야경을 즐기다 예상치 못한 사건까지 겪은 하루였습니다. 매번 가던 곳도 친구와 함께하니 색다르게 보였고, 평범한 순간도 웃음과 에피소드로 저도 여행하는 기분이 든 하루가 되었습니다. 매일 지나가던 길, 서울이 색다르게 보이며 설레임을 가진 순간 '아, 매일을 여행처럼 살아야겠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었지요.

서울에서의 하루, 익숙함 속의 새로움

LA에서 근무하는 친구는 늘 비행 스케줄 때문에 바쁘게 지냈던 터라 이번 체류에서는 하루를 온전히 비워두고 저에게 맡기더군요. 그래서 저는 ‘서울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하루 코스’를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아침부터 날씨가 참 좋았습니다. 가을 햇살이 살짝 부드러워지고, 바람은 한강 쪽에서 상쾌하게 불어왔습니다. 평소 같으면 제가 혼자 혹은 다른 친구들과 갔을 반포대교의 작은 펍, 그리고 집에서의 한우 파티, 마지막으로 야경 명소인 워커힐 호텔 라운지를 계획했습니다. 사실 이 코스는 저에게 특별한 건 아니었어요. 몇 번이고 가본 익숙한 곳이었으니까요. 친구는 어릴때 한국에 살았지만 서울은 처음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덕에 저도 익숙한 골목과 풍경을 다시 ‘처음’처럼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든 생각은 단순했습니다. 오늘은 다들 가는 관광 코스가 아니라, 서울에 사는 로컬이 많이 가는 곳으로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포대교 펍, 매번 가던 곳의 다른 얼굴

반포대교 근처의 펍은 제가 몇 년째 단골로 다니는 곳입니다. 한강 야경과 맥주를 동시에 즐길 수 있어서 혼자 가도 좋고, 친구와 가도 좋은 곳이죠. 그날은 낮술이었죠. 친구와 함께 펍에 들어서자 익숙한 내부가 전혀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친구는 LA에서 비행 후 바로 온 터라 조금 피곤했지만, 한강을 보는 순간 피곤이 싹 사라진 표정이었습니다. 반짝이는 강물 위로 보트가 지나다니고, 멀리서 분수쇼가 음악과 함께 춤추고 있었습니다. 저는 늘 보던 장면이라 그냥 ‘예쁘네’ 정도였는데, 친구는 “이거 영화 세트장 아니야?”라며 감탄했습니다. 실제로 영화에 나온 곳이기도 한 새빛 둥둥섬의 건축물이 더 그럴싸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맥주 한 잔과 치킨을 시켜 놓고,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했습니다. 비행 중 겪었던 재밌는 승객 이야기, 그리고 제가 요즘 빠진 취미에 대한 얘기까지. 매번 가던 그 자리였는데, 친구의 시선이 얹히니 공간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강바람과, 맥주, 치킨의 조합은 매일 가던 곳이 아니라 마치 우리가 뉴욕의 강가에 있는 것처럼 여행하는 기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집 테라스에서 한우, 그리고 감탄

펍에서 가벼운 술자리를 마친 후 우리는 제 집으로 향했습니다. 테라스가 딸린 집이라, 가끔 친구들과 모여 고기를 구워 먹곤 하는데, 이날은 LA에서 온 친구에게 제대로 한우를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매일 시키는 정육점에서 산 신선한 꽃등심과 채끝살을 꺼내 테이블 한쪽에 놓으니, 친구가 “이거 진짜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는 거지?”라고 묻더군요. 숯불에 고기가 닿자마자 올라오는 향에 저까지 군침이 돌았습니다. 소금 살짝 찍어 입에 넣자, 육즙이 터지며 고소한 맛이 퍼졌습니다. 친구는 첫 입을 먹고는 눈이 동그래지더니 “이건… 기내식으로 팔면 난리 날 텐데”라며 웃었습니다. 친구는 외국 항공사라 더더욱 기내에서 한우를 볼 일이 없었겠죠. 우리는 와인을 곁들이며 테라스 난간 너머로 보이는 서울의 불빛을 바라봤습니다. 친구는 “이게 진짜 럭셔리야. 호텔 뷰보다 좋아”라며 감탄했고, 저에게는 익숙한 풍경을 좋아해주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워커힐 라운지, 핸드폰 분실과 기적 같은 재회

마지막 코스는 워커힐 호텔 라운지 바였습니다. 한강과 서울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라 야경을 좋아하는 저와 친구에게 완벽한 선택이었죠. 친구의 LA 룸메이트인 친구도 같이 합류했습니다. 서울이 어렵니, 관광객 모드라 미어캣이니, 여행의 이모저모를 듣고 수다를 떨고 택시를 타고 가는 길, 우리는 펍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호텔에 도착하자 친구가 얼굴이 하얗게 질렸습니다. 택시에 핸드폰을 두고 내린 겁니다. 바로 콜센터에 연락했지만, 기사님과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날 밤, 라운지의 멋진 뷰와 칵테일을 즐기면서도 속으로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다음 날 아침,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택시 기사님이 핸드폰을 발견해 직접 호텔 앞으로 가져다주신 거죠. 친구는 연신 “한국 진짜 대박”을 외쳤고, 저는 그 순간 서울이 가진 또 다른 매력—사람들의 친절—을 새삼 느꼈습니다. 외국인이 느낀 최고의 놀람은 치안과 도덕성이라더니 코앞에서 관전했네요. 

하루가 남긴 서울의 얼굴

그 하루는 관광명소보다 더 특별한 순간들로 채워졌습니다. 반포대교 펍에서의 맥주, 테라스에서의 한우, 워커힐 라운지의 야경, 그리고 잃어버린 핸드폰을 돌려받은 이야기까지. 서울은 이미 수십 번 걸었던 길이고, 수없이 봤던 풍경이지만, 친구와 함께하니 전혀 다른 도시처럼 보였습니다. 친구의 시선 속에서 서울은 낯선 여행지가 되었고, 저는 그 여행의 가이드이자 동행이었습니다. 아마도 그 하루를 오래도록 떠올릴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만난 뉴욕이 서울과 겹쳐 보였고, (특히 저는) 그 날 하루가 서울이 아닌 다른 곳으로 순간 이동했던 것 처럼 느껴졌기 때문이겠죠. 좋은 사람과 여행은 늘 삶에 필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