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동안 서울은 평소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평일엔 늘 사람으로 가득 차던 지하철역이 텅 비고, 퇴근 시간마다 붐비던 도로는 놀라울 만큼 한산해집니다. 도심을 가만히 걷다 보면 “서울에 이렇게 고요한 순간이 있었나?” 싶을 만큼 낯설고 새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죠. 이건 마치 같은 도시인데, 완전히 다른 세계로 들어온 듯한 기분을 줍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장소가 조용해지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유명 관광지는 연휴 동안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기도 하죠. 북촌 한옥마을, 남산, 광화문 일대 같은 곳들은 여전히 인파로 가득 차서 진짜 여유를 원한다면 금세 피곤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년 추석이면,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 소문나지 않은 조용한 공간들을 찾아다니곤 합니다. 작년 추석에도 비슷했어요.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서울에 남았던 저는 “서울 한복판에서 오히려 휴식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을까?”라는 생각에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사람들이 거의 없는 숨은 명소들이 도심 곳곳에 숨어 있더군요. 관광책자에도 잘 나오지 않고, 심지어 서울 사람들조차 잘 모르는 공간들. 그래서 더 매력적이고, 그래서 더 기억에 오래 남는 장소들 말이죠. 이번 글에서는 제가 직접 경험한, 명절 연휴에 특히 더 고요하면서도 특별한 서울 중심가의 비밀스러운 공간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혼자 여유를 즐기고 싶은 분들, 북적임 없는 데이트 장소를 찾는 분들, 혹은 그냥 평소와 다른 서울을 만나고 싶은 분들께 작은 힌트가 될 거예요. 아마 글을 다 읽고 나면, 추석 연휴 동안의 서울을 전혀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실 겁니다.
추석에 더 고요한 시간, 북정마을 산책
북촌 한옥마을이 명절이면 늘 사람들로 북적이는 건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골목마다 삼삼오오 몰려다니는 관광객들, 카메라 셔터 소리, 기념품 가게 앞에 길게 늘어선 줄. 그런 풍경이 익숙하죠. 그런데 북촌에서 조금만 더 위쪽, 삼청공원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공간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북정마을입니다. 이곳은 관광지라기보다는 여전히 생활이 이어지는 작은 동네라, 명절이 되면 더 고요해집니다. 작년 추석 전날, 저는 아무 계획도 없이 북촌을 걷다가 우연히 이곳에 들어섰습니다. 길은 생각보다 가팔랐고, 조금 숨이 찼지만 오히려 그 덕에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아닌 제 호흡과 바람 소리만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오래된 한옥 담벼락 사이로는 들꽃이 피어 있었고, 발밑에서는 낙엽이 바스락거렸습니다. 북촌의 번잡한 소리를 뒤로하고 몇 분만 걸었을 뿐인데, 마치 서울 속 또 다른 세계로 발을 들인 기분이었죠. 골목 끝자락에는 작은 카페 하나가 있었는데, 간판조차 소박해서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었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니 오래된 주택을 개조한 듯한 인테리어, 낡았지만 편안한 나무 의자가 자리하고 있었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옥상정원이 마치 비밀 정원 같았습니다. 추석 연휴라 그런지 손님도 거의 없어,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놓고 창가에 앉아 있자니 아무도 없는 외딴 섬에 혼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북정마을은 길이 그리 길지도 않고, 특별히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 담백함이야말로 명절 연휴에 서울에서만 느낄 수 있는 ‘숨은 휴식’ 같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몰리는 북촌을 지나쳐 조금만 더 걸어올라가면, 전혀 다른 서울의 얼굴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곳은 충분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차 없는 서울, 추석의 한강 자전거길
평소엔 북적이는 한강도 추석 연휴만큼은 믿기 힘들 정도로 한산합니다. 반포에서 여의도까지 이어지는 자전거길은 서울에서 이런 평화를 느낄 수 있었나 싶을 정도로 고요하죠. 작년 추석 당일, 저는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전기자전거를 빌려 반포까지 달려봤습니다. 길 위엔 흔히 보던 킥보드나 인라인스케이트 소리조차 없었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만이 리듬을 만들어주고 있었습니다. 강바람은 선선했고, 노을이 지는 강물 위에는 오직 유람선 불빛만 반짝일 뿐이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아니라, 다른 나라의 어느 조용한 강가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죠. 중간중간 벤치에 앉아 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이 이상하게 느리게 흘러갑니다. 보통 주말에 오면 벤치마다 커플과 가족 단위로 가득 차서 자리를 잡기 힘든데, 추석 연휴엔 빈자리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저는 가방에 싸온 도시락을 꺼내 혼자 먹었는데, 그 조용한 분위기 덕분에 오히려 혼밥이 더 특별한 경험처럼 느껴졌습니다. 햇살이 살짝 비치는 벤치에서, 강물 소리와 멀리 들려오는 자전거 체인 소리만이 배경음악처럼 흐르고 있었습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새빛 둥둥 섬은 진짜 ‘명당’이었습니다. 평소엔 봄 벚꽃이나 가을 코스모스 시즌에 사람들로 붐비지만, 추석엔 믿기 어려울 만큼 비어 있었습니다. 돗자리를 깔고 그냥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니, 도시 한복판인데도 캠핑장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강바람 소리와 새소리만 남아, 잠깐이지만 완벽한 휴식에 빠져들 수 있었죠.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보니 반포대교 분수쇼가 시작되는 시간도 겹쳤습니다. 평소엔 인파가 몰려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도 어려운데, 그날은 앞줄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물줄기가 강물 위로 펼쳐지는 장관을 혼자서 즐기는데 사람들이 북적이지 않으니, 같은 장면도 훨씬 더 웅장하고 압도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서울에서 보기 드문 ‘여백’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였습니다.
명절이면 더 특별한, 중심가 숨은 명소들
서울 중심가에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한적한 공간들이 숨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정독도서관 뒤편 작은 정원은 북촌과 삼청동을 벗어난 순간 만날 수 있는 숨은 쉼터예요. 명절엔 관광객들이 몰리지 않아 벤치에 앉아 책을 읽거나 산책하기에 딱 좋습니다. 또 다른 공간은 정동극장 뒤편 공터입니다. 덕수궁 돌담길은 늘 붐비지만, 바로 뒤편의 공터는 바람이 솔솔 불고, 벤치에 앉아 있으면 도심 한가운데서도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을지로 골목 카페도 빼놓을 수 없어요. 인쇄소와 공업사가 즐비한 골목 사이에 숨어 있는 카페들은 명절엔 더 조용해져, 평소엔 느낄 수 없는 레트로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네온사인과 낡은 철문이 주는 독특한 감성은 서울의 다른 곳과 확실히 차별화됩니다. 마지막으로 추천하고 싶은 곳은 문화역서울284 뒷마당입니다. 서울역 앞은 항상 복잡하지만, 구역사 뒤쪽은 전혀 다른 세계예요. 명절엔 더 적막해져서, 기차 소리를 들으며 벤치에 앉아 있으면 잠깐의 시간여행을 하는 기분이 듭니다. 이런 장소들은 화려한 관광지보다 훨씬 서울의 진짜 얼굴을 보여줍니다.
추석 연휴의 서울은 평소와 다르게 한적하고 여유롭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비어 있는 공간이 좋은 건 아니죠. 중요한 건, 그 고요함 속에서 나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입니다. 북정마을에서 산책을 하든,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타든, 정동극장 뒤편에서 바람을 맞든, 그것이 곧 서울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간이 됩니다. 이번 연휴엔 북적이는 관광지 대신, 이런 숨은 명소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보세요. 분명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