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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의 고향 영국 위스키 향의 매력

by 호호아저씨호 2025. 8. 14.

영국 유학시절 동네 펍 위스키와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

위스키의 고향에서 시작된 하루

영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학기 말만 되면 저는 작은 배낭 하나를 메고 기차에 올랐습니다. 학교 도서관과 카페 사이를 오가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북쪽으로 향하는 그 여정이야말로 제 유학생활의 숨구멍이었죠. 여느때와 같은 시험준비 중, 저는 친구 엘리엇에게 “이번 시험이 끝나면 위스키 고향을 찾아가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런 계획이라도 있어야 지긋 지긋한 시험기간이 빨리 끝날 것 같았습니다. 런던에서 출발한 기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창밖의 색을 바꿔갔습니다. 처음엔 붉은 벽돌 건물과 회색 하늘, 그 다음은 초록빛 들판, 그리고 하이랜드로 들어서자 그 초록마저 거친 바람에 눌린 황갈색으로 변했습니다. 스코틀랜드로 향하는 길은 그 자체로 ‘위스키 여행’의 프롤로그였습니다. 작은 역에 내리자, 공기 속에 묘하게 알싸한 향이 섞여 있었습니다. 평소엔 흥청 망청 '부어라, 마셔라' 하며 친구들과 같이 노는걸 즐기는 수준이었지만, 그날만큼은 한 잔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그 속에 담긴 시간과 사람을 느끼고 싶었습니다. 첫 번째 목적지는 스페이사이드. 그곳에서 저는 제 유학생활 중 가장 인상 깊은 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스페이사이드의 아침, 위스키 향이 깃든 공기

스페이사이드에서 맞이한 아침은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숙소 주인 할머니가 손수 구운 스콘을 내오며 “위스키 잼은 꼭 발라 먹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지만, 그 잼 속에는 12년 숙성 몰트가 스며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아침부터 위스키라니, 이런 횡재가 하면서 따뜻한 스콘과 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제 혀끝에서 유학 시절의 모든 피로가 사라지는 듯했죠. 그날 투어에서 만난 마스터 디스틸러는 저를 보더니 “학생이야?”라고 물었습니다. 제 대답을 듣자, 본인도 젊은 시절에는 런던에서 공부했다며, 결국 고향 증류소로 돌아와 여기 있다며 웃음을 지었습니다. 저는 그의 손짓에 따라 증류기 옆에 섰고, 뜨겁게 데워진 구리를 손끝으로 느꼈습니다. 시음 시간에는 18년 숙성 위스키를 한 모금 머금었는데, 처음엔 꿀처럼 부드럽다가 뒤에는 알싸한 후추 향이 올라왔습니다. 그 복합적인 맛은 마치 유학 시절 제 하루 같았습니다. 낮에는 과제와 시험 준비로 고단하지만, 밤에는 친구들과 펍에서 웃고 떠드는 그 감정 말입니다. 이 위스키 한잔에, 그들의 삶과 시간, 그리고 스페이사이드 풍경이 녹아 있었습니다. 잔을 내려놓고 나니, 목구멍 깊숙이 남은 온기가 천천히 퍼지며 영국 북부 차가운 공기와 섞였고, 그 여운은 하루 종일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마치 그 순간만큼은 제가 위스키의 한 조각이 된 듯했죠.

하이랜드의 황량한 매력과 한 잔의 위로

하이랜드에 도착했을 때, 역시 북부답게 바람이 거세더군요. 버스 창밖으로는 끝없이 이어지는 황갈색 들판과 낮게 깔린 구름, 그 사이사이로 검은 돌담과 이끼 낀 초가집이 간헐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런던과는 다른 시골 마을 입구에는 작은 간판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었고, 그 아래로 좁고 굽은 길이 절벽과 강 사이로 이어졌습니다. 바람에 실려 오는 짠내와 흙냄새가 여행의 긴장을 풀어주면서도, 어딘가 술잔을 기울이고 싶은 분위기를 가진 동네였습니다. 증류소에 도착하자,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의 굴뚝에서 얇은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가이드는 저를 오래된 셀러로 안내했고, 그 순간 공기 속에 스며든 바닐라와 구운 견과류 향이 코끝을 스쳤습니다. 속으로 저는 '오, 위스키 향이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셀러 한쪽, 거대한 오크통의 마개를 열자 따뜻한 증기가 살짝 피어올랐고, 가이드는 긴 파이프를 넣어 병입 전 원액을 따라주었습니다. 첫 모금은 혀끝을 강하게 자극했지만, 곧 바닷바람의 짠맛과 젖은 흙의 묵직함이 따라왔습니다. 목을 타고 내려갈 때는 마치 오래된 돌길을 걸으며 하이랜드 마을을 천천히 관통하는 듯한 부드러운 잔향이 남았습니다. 혼자 셀러 안에 앉아, 오크통 사이로 스며드는 희미한 빛을 바라보니 런던의 북적임과 학업 스트레스는 이미 잊어버린 듯 했습니다. '이런 맛에 여행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다음 여행지는 어디로 할까하는 생각과 함께 통장의 잔고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일라섬, 바다와 위스키가 만나는 곳

다음으로 간 위스키 여행은 아일라 섬이었습니다. 위스키하면 또 아일라를 빼놓을 수가 없죠. 아일라섬에 도착하자, 차가운 바닷바람 속에 스모키한 향이 스며 있었습니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부두 옆 작은 등대가 보였고, 그 옆으로는 바다와 맞닿은 초록빛 초원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유학 시절 가장 바쁘고 지친 학기에 찾은 곳이라, 발을 디딘 순간부터 이 섬의 공기 자체가 위로로 다가온 날이었습니다. 작은 증류소로 향하는 길은 바닷가를 따라 이어졌고, 파도 부서지는 소리와 갈매기 울음소리가 발걸음을 따라왔습니다. 증류소 안에서는 마스터 몰트맨이 커다란 화로 위에 피트를 태우고 있었습니다. 건조된 토탄이 불에 닿자, 특유의 진한 연기와 흙냄새, 그리고 바다에서 날아온 소금기 섞인 바람이 한꺼번에 섞여 공기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가 건넨 한 잔의 위스키는 황금빛 속에 작은 섬의 모든 계절이 담긴 듯했습니다. 첫 모금은 부드럽지만 곧 스모키한 향이 혀와 코를 감싸고, 이어 미묘하게 짭조름한 해풍 맛이 뒤따랐습니다. 마치 바다 위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밤을 지새우는 듯한 맛이었죠. 그날 밤, 마을의 작은 펍에 들어갔습니다. 낡은 목재 테이블 위로 놓인 다양한 병들이 마치 주민들의 손때가 묻은 앨범처럼 보였습니다. 현지인들과 잔을 부딪히며 “드람(dram)”이라는 단어를 배웠습니다. 손바닥만 한 잔이었지만 그 잔을 비운 후에도, 아일라섬의 향은 오래도록 제 입안과 기억 속에 머물렀습니다.